통유의 단계란 배움의 영역과 비움의 영역 차이점

남보수 경북신문 중부 본부장
남보수 경북신문 중부 본부장

흔히 사람들은 나무(문서나 기록)를 보지말고 숲(시스템)을 보라고 한다.

나무 하나하나에 집착하다 보면 숲이 가지고 있는 전반적인 특성과 기능을 파악하기 어려워  근시안적 사고를 가지고서 사물을 판단하지 말고 전체적인 상황을 고려해 숲을 판단하라는 뜻이다.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는 임금과 신하를 떠나 격의 없이 농담하는 군신관계다. 하루는 둘이 바둑을 두면서 이성계가 ''대사는 나무를 보고 있지만, 나는 숲을 보는 중”이라고 말한다. 즉 무학대사는 잔수에 밝았으나, 자신은 대세에 밝아 반상을 두루 살피며, 바둑을 둔다는 뜻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길을 가다가, 한 농부가 산밑에서 집을 짓고 있는 광경을 보았다. 풍수지리에 능한 무학은 “전하 저 농부는 3년 안에 거부가 되어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이 들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성계는 “저곳은 몇 년 안에 폐허가 될 것”이라며 무학의 말을 반박한 후 내기를 했다.
그로부터 3년 후, 그곳을 지나던 무학대사는, 자기 생각과 반대로 폐가가 되어 있는것을 본 후 이 사실을 이성계에게 전했다.

그러자 이성계는 웃으며, "대사는 풍수지리에는 밝으나 대세를 판단하는 데에는 약하다”며, 무학의 말대로 농부는 큰 부자가 되었지만, 이성계는 “부자가 된 사람이, 더 이상 이런 골짜기에 살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 해 무학과 견해를 달리했다.

즉 무학은 풍수지리는 적중했지만, 이성계처럼 사람의 마음을 읽고 결과를 예측하는 데에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무학과 이성계의 차이점은 ‘집터가 명당임을 아는 것까지는 배움의 영역’이고, ‘부자가 된 농부가 그 집을 떠날 것까지 보는 것은 비움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둑에서는 이를 ‘통유의 단계’라고 한다. 통유란 채우는 단계를 지나 비움으로써,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알고 이해하는 경지를 터득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의 삶보다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살아가려면, 우리는 자기가 형성해 놓은 자신의 틀을 깨고 나올때 비로소 그동안 보지 못했던 다른, 다양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도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통유의 단계 터득과 함께 서로 협력하며 살아가려면 알 속의 새끼와 알 밖의 어미가 함께 알껍데기를 쪼아 내야 알밖으로 나올수 있는 줄탁동기(啄同機) 협동 정신이 회사 발전과 자신의 성공의 지름길이 될 수 있다.

물극필반(物極必反)과 기만즉경(器滿則傾)이란 말도 있다.  모든 사물이나 상황은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하고 ‘그릇도 가득 차면 넘친다’는 뜻이다.

이말은 당서(唐書)와 구당서(舊唐書)에 기록된 대신 소안환(蘇安桓) 의 측전무후에 대한 간언 상소문으로 그는 "하늘의 뜻과 백성의 마음은 모두 당나라 황실 이씨께 향해 물극필반,기만즉경의 세상이치를 알아야 한다”며, 측전 무후의 퇴진을 권유하는 내용이다.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에도 물장즉보(物壯則老)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처럼 세상사는 매사에 흥망성쇠가 계속된다는 뜻으로 즉 달도 차면기울며, 아름다운 꽃도 열흘이면 진다는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가 영원무궁할것으로 착각하며 살아가 한번 살아온 과정을 되돌아 보는 마음의 여유도 가질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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