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식 천호식품 회장은 한 때 밥값이 없어 600원짜리 소시지 하나로 끼니를 때우던 40대 후반의 남자였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97년 외환위기 당시 25억 원의 빚을 1년 반 만에 청산하고 다시 연매출 800억 원대의 회사를 일궈냈다.

김영식 천호식품 회장(70)에게 따라 붙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열정경영의 화신', '베스트셀러 작가', '기업체 섭외 1순위 강사' 등등. 하지만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타이틀은 '부자전도사'인 듯싶다.

◇ 부자 카페 관리하는 회장님

회원수 수만 명에 달하는 인터넷 카페를 손수 운영하는 회장님. 다음 카페 '뚝심이 있어야 부자가 된다'에는 맨손으로 식품사업을 시작해 부산 100대 부자에 올랐던 그가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인해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가 재기하기까지의 진솔한 얘기가 올려져있다.

카페는 상투적인 성공담을 홍보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저,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부자가 됐으면 좋겠다. 우리 직원들도 부자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운영한다.

김 회장은 20년 넘게 일기를 쓰고 있다. 그의 전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97년 말 외환위기 때부터 몸에 밴 습관이다. 당시 사채업자의 빚 독촉을 견디기 어려워 벼랑 끝으로 향하고 싶을 때, 물이 새는 여관에서 하루 3000원의 숙박비를 주고 기거할 때, 그에겐  잘 될 것이라는 자기암시가 간절히 필요했다.

"아내한테 전화 오는 게 제일 겁이 났죠. 주머니에 땡전 한 푼 없는데 집에서 돈 붙여달라는 말을 하지는 않을까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습니다. 첫 마디가 600원짜리 소시지와 소주가 식사의 전부였는데 '밥 잘 먹고 있냐, 아픈 데는 없냐'였어요. '당신 아직 젊어, 재기할 능력 있으니까 힘내', 그러고 끊더군요."

김 회장은 본업인 식품으로 다시 서겠다는 자기암시를 행동으로 옮겼다. '못 팔면 죽는다'는 마음으로 버스, 지하철, 심지어 판매소(서울)와 공장(부산)을 오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제품 광고 전단을 뿌렸다. 그게 지금의 그를 만든 원동력이다.

마흔일곱이 재기하기에 늦은 나이라고 포기했다면 천호식품도 그도 없었을 터. 김 회장이 카페에 올린 글 하나 하나는 그저 힘든 시절에 대한 회고가 아니라 가진 것 없지만 성공을 갈망하는 이들을 위한 응원가다.

"옛날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하죠. 어제는 부도난 수표, 내일은 언제 부도날지 모르는 약속어음이지만, 오늘은 현찰이에요. 지금 황금을 쥐고 있지 않다면 지난날은 모두 잊고 다시 시작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습니다."

◇IPO와 부자 직원 만들기

한 번 인연을 맺은 고객은 평생 친구라는 생각으로 철저히 모셨다. 전화번호책자를 뒤지며 한명 한 명에게 전화를 거는 것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모은 고객 DB(데이터베이스)만 60만 명. 

천호식품은 재구매 시기가 되면 전화와 문자 등을 통해 재구매를 유도하고, 맞춤형 서비스를 한다. 덕분에 고객 재구매율이 87.5%나 된다.

이렇게 대리점 하나 없이 인터넷과 통신판매로 지난해 500억 원의 매출을 거뒀다. 천호통마늘진액은 출시 4년 만에 100만 박스가 팔렸다. 올해는 일본에 현지법인(천호재팬)도 세웠다.

부산 100대 재력가 중 1명에서 부산에서 가장 빚 많은 100인 중 한 명으로, 다시 순이익률 7%·매출 800억 원을 바라보는 중견기업 오너로 일어서기까지 김 회장이 겪은 풍파는 훈장이 됐다.
내년이면 73세. 인생은 100세까지라 말하는 김 회장이지만 손주가 생기며 어느덧 할아버지가 됐다. 인세와 강연료 수입 2억 원을 '출산장려 프로젝트'에 출연한 건 그 때문이다.

그가 운영하는 다음 카페에 신청한 후 셋째를 임신하면 누구든 총 200만 원을 지원받게 된다. 마늘농가 장학금을 조성하고 부산 사상구의 저소득 독립 유공자 가족에게 건강식품을 지원하는 일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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