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용/경상북도 문화융성위원회 위원

조선 후기의 실학자 최한기(崔漢綺)선생의 본관은 삭녕(朔寧)이며, 자는 지로(芝老)이고 호는 혜강(惠岡) · 패동(浿東) · 명남루(明南樓) · 기화당(氣和堂) 등이다. 아버지는 생원 최치현(崔致鉉)이며, 어머니는 청주 한씨(淸州韓氏)이다. 평생 학문에 진력하였고, 부인 반남 박씨(潘南朴氏)이다.
그의 일생에 대하여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그가 수많은 책을 저술하였으며 그 가운데 상당수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방대한 저술에도 불구하고 같은 시대의 다른 학자들조차 그의 이름을 기록에 남긴 일은 극히 드물다.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그에 관한 기록이 몇 차례 나올 따름이다.
이규경은 그를 뛰어난 학자로서 많은 저술을 남겼다고 소개하였고, 또한 그가 중국에서 나온 많은 신간서적을 가지고 있었다고도 기록하였다. 최한기가 당대의 지리학자 김정호(金正浩)와 친분이 두터웠고 이들이 함께 중국에서 나온 세계지도를 대추나무에 새겼음을 알 수 있다. 1834년(순조 34) 김정호가 『청구도(靑丘圖)』를 만들자 최한기는 여기에 제를 써주기도 하였다.
최한기의 학문세계는 유교적 전통에서는 극히 드물게 강한 경험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심지어, 맹자가 인간의 본유적(本有的)인 것이라고 규정한 인의예지(仁義禮智)조차 경험으로 얻게 되는 습성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모든 앎이란 선천적이 아니라 후천적 경험을 통하여 배워 얻어지는 것이다. 또, 경험이란 경험의 주체인 인간의 마음과 경험의 대상, 그리고 이들 둘을 맺어주는 감각기관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의 저술 『기측체의(氣測體義)』 신기통(神氣通) 권2 이통(耳通)이란 글에서 ‘어쩌다 속는 것은 부끄러울 것 없지만, 속고도 속은 지 깨닫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철학자 증자(曾子)가 살인했다는 오보를 마을 사람들이 세 차례나 전하자 아들을 깊이 믿었던 증자의 어머니도 결국엔 두려워 베틀 북을 던지고 달아났다는 옛 고사나, 2차 대전 당시 나치 정권의 선전을 담당한 괴벨스의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되고 다음엔 의심받지만 되풀이하면 결국 모두 믿게 된다.’는 말로 보나 세상에는 어쩔 수 없이 속게 되는 상황도 분명히 있다. 거짓인지 모르고 하였건 의도적으로 하였던 거짓말이 계속되면 진실은 알기 어려워지기 마련인데, 최한기 선생의 이 일갈(一喝)은 지나치게 각박해 보인다.
그러나 ‘한 번 속고 두 번 속아도 평생토록 그 사람에게 속는 자가 얼마나 많으면 젊어서부터 탐관오리가 늙어 죽을 때까지 편안하게 부귀를 누리는가.’ 라고 말한 선생의 탄식에서 이 일갈의 이유가 엿보인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류를 읽지 못하고 정체된 조선이 개화하기만을 바랐던 선생의 애정은 일갈과 탄식에만 그치지 않고 다음과 같은 근대적 개인상을 제시하는 데까지 미치고 있다. ‘상대의 말씨와 표정을 먼저 살피고 나서 그가 하는 말을 들으며, 견해를 다 듣고도 이말 저말을 제대로 참증(參證)하여 낌새에 혹 묻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떠벌인 단서가 있거나 또는 지극히 작은 단서에 대해 짚이는 바가 있다면 반복해서 따져 물으라. 반드시 드러나는 것이 있을 것이다.’ 국민들의 정치적 경제적 선택은 신속하고도 엄청나게 쏟아지는 정보에 좌우된다. 그 정보에는 또한 진실과 선전 · 선동들이 대부분 뒤섞여 있으니 참으로 진위의 판단이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나만의 판단 방법론이 없다면 선생이 제시한 길을 눈여겨 따라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지금 우리나라의 시국이 ‘최순실케이트’로 혼란하다. 최순실에게 속고도 속은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더욱 부끄러워해야 한다. 정치인, 관료, 지식인 등은 반성하여야 하며 국정을 농단한 정부여당은 책임을 져야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지 아니한 것은 헌법위반이다. 대통령은 헌법의 최후의 수호자로서 헌법을 훼손하여, 국정을 운영했기 때문에 권력의 주인인 국민이 하야나 퇴진 등을 외치고 있다.
100만명이 운집한 박근혜 퇴진 3차 범국민대회에 모인 국민의 분노를 보라! 민주주의는 백성이 근본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저항권은 헌법이 보장하기 이전에 천부의 권리이기에 집회, 결사, 표현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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