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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기획- 슬픈전설 담긴 방초정.. 국가 문화재 지정- 배롱나무 은행나무 조화 이룬 한폭의 그림같은 정자
- 연못가아름드리 왕버들수백 년 세월을 자랑
- 네모난 못안 좌우로 작은섬 이웃부부애 형상
  • 남보수 기자
  • 승인 2019.11.17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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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문화재로 지정에고된 김천 방초정

최근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예고된 김천 구성면 방초정은 정자와 연못,수백년된 배롱나무와 은행나무,수양버들이 한폭의 풍경화를 연상케 한다.

김천 방초정은 김천시내에서 황악산 바람재를 넘어 공자동계곡을 따라 내려가다 감천에 못 미쳐 오른쪽에 구성면 상원리 원터마을이 있다.

마을입구에 2층 누각이 자리하고 있는데 방초정이다. 정면 3칸,측면 2칸, 2층 다락 형태로 김천을 대표하는 정자다.

김천 방초정은 연안이씨(정양공) 집성촌인 구성면 상원리 원터마을 입구에 있는 정자로 1625년(인조3) 방초(芳草) 이정복(李廷馥)이 선조를 추모하기 위해 자신의 호(號)를 따 건립한 정자이다.

자신의 호를 따 방초정이라 했다. 기록에는 이정복이 조상과 선조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누각이라 한다.

◇ 지조지킨 슬픈 전설 담긴 최씨담

슬픈 전설간직한 최씨담 배롱나무

방초정앞 연못인 최씨담 에는 슬픈 전설도 간직하고있다.

'땅은 네모나고 하늘은 둥글다'는 주역의 원리를 형상화한 전형적인 한국의 정원 모습을 하고 있다. 못 이름을 최씨 담이라 부른다.

최씨 담에는 정절을 지킨 여인의 애절한 사연도 담고있다

방초 이정복의 처 최씨는17살에 시집온 화순 최씨 가문 처녀로 1년간의 꿈같은 신혼 생활을 마치고 이젠 시댁으로 가는 신행길을 앞두고 있었다.  

시댁에서도 인편을 통해 전쟁이 나 신행길이 위험하니 그냥 친정에 머물러 있으라고 했다.  

그러나 친정 부모의 생각은 달랐다. 시집가면 이미 시댁 귀신이 되어야 한다는 집안의 가르침을 따르기로 한 것.  나이 어린 최씨 부인도 며느리로서 도리를 따르기로 작정했다.  

전쟁이 언제 끝날지 알수없어 죽더라도 시댁에 가서 죽겠다며 몸종과 함께 신행길을 재촉했다.   최씨 부인은 몸을 숨겨가며 40여 리 길을 걸어 마침내 시댁 마을을 눈앞에 두게 된다. 

마을 입구에 이르렀을 때 때마침 들어닥친 왜병들과 마주친다.  

뒤쫓아 오는 왜병들에게 잡혀 능욕을 당할 위기에 처한 최씨 부인은 마을 앞 웅덩이에 뛰어들었다. 부인을 따르던 몸종 석이도 주인을 구하려고 뒤따라 연못에 뛰어들어 함께 죽었다.  

사랑하는 신부를 졸지에 잃은 신랑은 부인을 잊지 못해 여러 해 동안 웅덩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못 옆에 정자를 지어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부부의 인연을 영원토록 함께하기를 기원했다.  

그때 부인을 그리워하며 지은 정자가 방초정(경북도 유형문화재 제46호)이다. 

◇ 재혼한 이정복 부인께 미안함표시로 웅덩이 넓혀

방초정앞 비석

이정복이 부인을 잃고 애를 끊이다 후사를 걱정하는 집안 어른들의 성화에 떠밀려 재혼을 하게 되자 부인이 투신한 웅덩이를 넓혀 최씨 담이라 해 부인에 대한 미안함을 달랬다.

방초정 옆에는 최씨 부인의 정려각이 세워져 있다.

지역 유림들이 정절을 지키기 위해 웅덩이에 목숨을 던진 최씨 부인의 열행을 조정에 상소하자 인조 임금이 어필 정려문을 내렸다.

정판과 비석에는 '절부 부호군 이정복 처 증숙부인 화순최씨지려'(節婦 副護軍 李廷馥 妻 贈 淑夫人 和順崔氏之閭)라고 적혀있다.

◇ 노비도 주인 상전 따라 투신

정려각 옆에는 충노석이지비(忠奴石伊之婢)라는 작은 비석이 있다.

1975년 방초정 앞 연못인 최씨 담'준설 공사를 하던 중 이 비석이 발견돼 주민들이 이곳에 세워 놓았다.

이는 전설로만 전해졌던 몸종 '석이'가 상전이었던 최씨 부인을 구하기 위해 웅덩이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으로 새삼 세상을 놀라게 했다.

주인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노비의 충성심에 감복한 연안 이씨 문중에서 비석까지 만들었으나 당시에는 반상의 신분이 엄격했기에 사정상 비석을 세우지 못하고 연못에 던져 주었던 것이다.

이런  석이의 비석은 380년 세월이 지나서야 마을사람들에 의해 주인인 최씨 부인 정려각 옆에 세워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슬픈 전설속에서도 방초정 앞의 네모난 연못은 운치가 그만이다.  연못가에 아름드리 왕버들과 배롱나무는 수백년 세월을 자랑한다. 네모난 못 안에는 좌우로 작은 섬이 이웃해 마치 부부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상이다.

최씨와 노비석이가 투신한 최씨 연못(담)

◇ 백일홍의 애잔한 전설

백일홍(배롱나무) 은 백일 동안 피는 붉은색 꽃이라 하고 결혼하기로 한 정인을 백일동안 기다리다 죽은 처녀의 넋이라고 이름 붙여져 있다.

바닷가에 이무기가 나타나 행패를 부리자 마을에서 처녀를 제물로 바쳐왔다.

마침 제물로 선택된 처녀에게 백년해로를 약속한 총각이 있었는데 약혼녀가 제물로 뽑히자 이무기를 죽이기로 하고 길을 떠났다.

이 둘은 배의 돛에 흰 깃발이 꽂혀 있으면 이무기를 처치한 것으로 알고 마중 나오고. 빨간 깃발이면 내가 죽은 것이니 도망갈 것을 약속했다.

 백일째 되는 날 배의 앞머리가 빨간 깃발을 꽂은 배가 눈에 들어오자 망연자실한 처녀는 해안가 암벽에서 뛰어내려 그만 죽고 말았다.

사실은 총각이 이무기를 처치했는데 처음에 달고 간 흰 깃발에 이무기의 피가 묻은 것이라는 애달픈 사연이다.

 마을사람들은 처녀를 양지바른 곳에 묻었는데 예쁜 꽃이 붉게 피어나서 백일을 꽃 피우다가 지더라는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 방초정 원터마을 대표적 양반촌

초당선생 바위 위 누각

방초정이 있는 원터마을은 김천의 대표적인 양반촌이다. 연안 이씨 집성촌으로 지금도 마을 주민 대부분이 연안 이씨로 예나 지금이나 전형적인 집성촌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다.

1625년에 세워진 방초정은 손자인 이해가 1689년 중수하고 1727년 한 차례 보수했다.

1736년 큰 홍수로 정자가 유실되자 1788년 후손인 이의조가 수해로부터 안전하도록 지금의 위치에 옮겨 지었다

방초정에서 조금 떨어진 곳 상좌원리에는 또 다른 정자가 하나 있다.이곳은 정작 '정자'보다는 정자를 끼고 있는 둘레 풍경이 매우 멋스러운 곳이다.

연안 이씨, 초당 장원 선생이 글을 읽고 즐겨 머물렀던 곳이라는데, 커다란 바위 위에 세워져 있고 바위마다 글자가 새겨있다.

◇ 문화적가치 뛰어난 방초전 국가 문화재 지정 손색없어

방초정내 목각 현판

방초정은 정면 3칸, 측면2칸 규모로 2층 누각 중앙에 1칸 크기의 온돌방으로 중앙의 온돌방 사면은 모두 창호를 바른 분합문으로 구성돼있다.

건축 수법이 대체로 조선후기 양식으로1788년 정자가 중건될 당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체 보존상태도 양호해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으로 높은것으로 평가됐다.

또한, 현 정자의 중건 인물이 영·정조 때 영남 노론 학단을 대표하는 유학자인 이의조의 정자란 점에서 역사적인 가치는 높다고 할수있다.

방초정 앞 ‘최씨 담’은 현재까지 알려진 국내 지당 중 방지쌍원도의 전형을 간직한 유일한 정원 하수구로 마을 오,폐수를 재처리 여과하는 수질 정화시스템인 친환경적 기능도 함께 갖춰 공학적,학술적 가치도 매우 높다고 할수있다.

부인최씨와 노비가 함께 투신한 연못

김천시는 김천금릉빗내농악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승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방초정이 국가무형문화재로 또 다시 지정예고 돼 문화재 활용을 통한 관광수요 창출 및 문화도시로서의 기반을 더욱 공고히 갖추었다.

남보수 기자  ktn34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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