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시는 14일 박정희탄생100돌 기념행사를 가졌다.
이날행사에는 행사를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지지하는 보수단체간 시위도 벌어졌다.
반대론자들 생각은 어떨지 몰라도 박정희 그는 이나라 국민을 가난의굴레에서 벗어나게한 장본인이다.
100년 전 오늘 박정희는 구미상모동에서 태어났다. 파란만장한 삶을 거친 그는 '조국 근대화'와 '민족중흥'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 절치부심했다. 박정희가 이끈 산업화는 수천년 이어져 온 한국 사회를 뿌리부터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박정희 시대 이세상에 태어나지도 설사 태어났드라도 너무어려 아무것도 모르던 사람들이 성향이 다른 위정자들의 말만 듣고 박정희는 탄생하지 말아야할 적폐청산대상이란다.
박 전 대통령의 공에는 눈을 감고 과는 부풀리는 반대 단체들의 외눈박이 시각이 바로 그렇다. 비판론자들은 그는 유신독재로 한국의 민주주의를 후퇴시켰고, 반공 이데올로기로 사상의 자유를 억압했으며, 남북 대결을 장기집권의 지렛대로 이용했다. 

이런 ‘과’가 박 전 대통령의 전체 상(像)의 한쪽 면에 자리 잡고 있다면 그 반대 면에는 절대 빈곤 탈출과 지금 우리가 누리는 경제적 번영과 자유의 초석을 놓은 ‘공’이 위치해 있다.
그결과 수출은 4100만달러에서 150억달러로 늘어났다. '은둔의 나라'였던 한국은 자유무역시장의 세계 질서를 성공적으로 활용했다. 그 결과로 사회 구조도 달라졌다. 1961년 국민의 63%가 1차 산업에 종사하던 농업사회는 1979년 63.4%가 제조업과 서비스업에서 일하는 산업사회로 탈바꿈했다.

특히, 박정희 시대의 변화는 양적 측면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의 '하면 된다' '잘살아 보자'는 정신은 무기력해져 있던 국민을 뛰게 만들었다. 더 이상 가난을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밤낮없이 일했다. 박정희는 근대화의 영웅과 무자비한 독재자란 상반된 평가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지만 박정희 이후의 한국이 이전과 달라졌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일부 좌파언론들은 ‘박정희는 권력에 눈이멀어 마누라까지 총탄에맞게한 장본인,죽은자의 재떨이 하나 모시고자 200억기념관 짓는다’는등등 말말까지 한다.
이런 박정희를 욕하기전에 한국전쟁을 일으켜많은 남한군인과 양민을 학살하고 그것도 모자라 아직도 체제유지로 3대세습까지 하며 고모부와 형까지 죽인것도 모자라 기아에 허덕이는 주민들은 뒤로한체 핵개발로 전쟁에미쳐있는 북한정권은 왜 침묵하는지 반문하고 싶다. 

이는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각에서 공(功)과 과(過)를 공평하게 평가하지 않고, 이념적`정파적 편견에 매몰된 흑백논리가 우리 사회에 깊이 포진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는 우리 사회의 집단적 지력(知力)은 덩치만 커진 어린아이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제력은 세계 10위권이지만 지적 성숙도는 이에 한참 뒤지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하지만 지금 박정희를 존경한다고 하면 그순간 삿대질을 당하기 일쑤다. 그를 존경한다는 것은 곧 친일이자 매국을 의미하는 일이 됐다.

박정희는 누가뭐래도 세계에서 인도다음 최빈국인 대한민국을 오늘의 선진국 대열에 올려 놓은 장본인라는걸 삿대질하는 사람들도 알아야한다.
실제 박정희는 1998년 미국 타임지도 20세기 아시아 인물 20걸 중 한국인 박정희를 유일하게 선정했으며 심지어 한겨레신문(1999년)도 20세기 20대 뉴스 한국인 인물 1위와 2001년 국정홍보처도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인물1위로박정희, 2002년 월간중앙 조사시 전·현직 대통령이 다시 선거에 출마할 경우 당선자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처럼 박정희는 무너지는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킨 지도자지만 공도없이 과만 부각해 무차별 수난(受難)을 당하고 있다.

부화뇌동(附和雷同)이란 말이있다.
아무런 주관 없이 남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쫒아가거나 줏대 없이 의견을 같이해 따라가는것을 말한다. 요즘젊은 세대들이 이를 많이 따라하다보니 박정희도 적폐 청산대상이 된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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