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정치는 여론정치다. 국민의 여론에 의한 정치를 하여야 한다는 이론이다. 즉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말이다. 민주정치는 모든 정치활동을 여론과 연결시켜 그 정당성을 인정받으려 하기 때문에 여론정치라고도 부른다.

여론이란 어떤 공공의 문제에 관한 다수국민의 공통된 의견이나 요구가 집약되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고대 서양에는 ‘민중의 소리는 신의 소리’ 라는 격언이 있었으며, 동양에서도 ‘민심은 천심’ 이라 하여 여론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여론이 실질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기 시작한 것은 근대 이후 민주정치가 발전하면서부터이다.

특히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등의 매스컴의 발달에 따라 넓은 범위에 걸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하여 여론이 보다 빠르고 폭넓게 형성됨으로써 큰 힘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여론에는 보도기관이나 대중행동 등을 통하여 사회적으로 조직화된 현재적(顯在的)여론과 아직 조직화되지 않은 채 막연한 기분이나 감정 또는 사고나 관념으로서 사회 안에 산재해 있는 잠재적(潛在的)여론이 있다.

여론이 정치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이 잠재적 여론이 현재적 여론으로까지 승화되어야 한다. 참다운 민주정치, 즉 여론정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올바른 여론이 형성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가 국민에게 널리 전달되어야 하며, 둘째 이러한 정보에 대한 정확한 해설과 자유롭고 책임성 있는 비판이 이루어져야 하고, 셋째 모든 국민이 정확하게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 사회전체의 복리와 이익을 고려하여 판단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여론조사의 역사는 584년 전인 143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세종(世宗)은 토지의 질이나 농사의 풍작 여부에 관계없이 똑같은 세금을 내도록 하는 새로운 세법인 공법(貢法)실시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호조(戶曹)가 5개월간 총 17만2806명이란 대규모 표본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과는 찬성 9만8657명, 반대 7만4149명이었다. 이에 따라 세종은 ‘백성들이 좋아하지 않으면 이를 시행할 수 없지만, 좋다는 사람이 많으므로 법을 시행한’ 고 공포했다.
지금처럼 과학적인 표본추출에 의한 여론조사는 물론 아니었겠지만, 백성들의 뜻에 따라 정치를 하려고 했던 세종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성군인 세종은 역시 만백성이 따르는 군왕이었다. 지금 정치현실에서는 여론조사를 많이 한다. 여론조사란, 사회구성원이 각종 사회적 문제나 정책 쟁점 등에 관하여 가지고 있는 신조(信條) 견해 태도 의향 등을 밝히려는 목적에서 행하는 사회조사이다.

주로 미국에서 발달하였는데, 시초가 된 것은 대통령선거 결과를 사전에 예상하는 모의투표(Straw poll)였다. 그것은 1824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나 실질적으로는 20세기초부터 일종의 유행이 되어 많은 언론기관이 경쟁적으로 실시하였다.
여론조사도 문제는 있다. 유도를 위한 질문을 하기 쉽고, 특히 자신에게 유리한 정책이나 후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한 후 질문을 함으로써 호의적인 답변을 유도할 수도 있다. 질문에 등장하는 주요 단어의 배열순서도 여론조작의 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이외에도 질문자의 성별이나 사회적 지위 심지어 목소리에 따라서도 응답은 다르게 나올 수 있다.

그만큼 사람의 인지상태나 태도를 숫자로 계량화한다는 자체가 어려운 일인 것이다. 이처럼 큰 함정을 지니고 있는 여론조사에 대해 해당 정치인이나 일반 국민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 경향이 있다. 이는 보도경쟁에 쫓겨 조사결과를 성급히 보도하는 언론의 책임도 크다. 특히 매스컴들은 오차에 대한 설명을 약하게 하고 한다 해도 적은 크기의 자막으로 처리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세종대왕시대의 여론조사가 지금보다 더 정확하고, 진정으로 백성의 마음이 반영되었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여론을 왜곡하지 아니하는 여론정치가 백성을 위한 정치이며, 백성들에게 의견을 묻어서 정책을 시행함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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